군에 입대한 이후 세상과 나를 이어준 것은 TV도 신문도 아닌 잡지였다.
1년동안 프리미어, GQ를 정기구독하고 후임들이 아레나,에스콰이어,멘즈헬스를 매달 구입하는 덕에
한국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한 패션 잡지는 거의 보고있는 셈이다.
배에서 생활하던 시절에는 TV나 신문따윈 볼 생각도 못했으니 피랍사건을 알게 된 것은
모든 사건이 끝난 뒤였고 전도연의 칸 수상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문명을 이어준 것은 공중전화 너머의 목소리뿐이었다.
소고기 파동이 한국을 뒤덮은 것을 안 것도 서울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을 때 광화문에 늘어선
의경, 전경들을 통해 그리고 오존에서 술을 마시고 나온 늦은 시간 길바닥에 널부러진
시위대의 흔적을 직접 보고 난 후였다.
사태의 심각성은 영화잡지건 패션잡지건 촛불집회 관련 기사가 나올 때 파악한거다.
정말 잡지가 주는 정보 외엔 문외한이었다. 책읽는 것, 영화보는 것 외엔 관심이 없었으니까.
프리미어가 종합엔터테인먼트지로 성격을 바꾸면서 (바꾸기전부터도) 정치, 시사적인 견해를
다루면서 그에 따라 내 관심도 높아지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아침엔 뉴스도 보고 신문을 읽는다.
하지만 잡지도 나를 배신할 때가 있었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다.
처음 당황한 것은 '지못미'로 도대체 이 단어는 뭘까 줄임말 같은데,
안여돼처럼 놀리는 건 아닌것 같고,
아 근데 안여돼도 안돼여로 잘못 알고 있었으니까 이것도 그런 것 아닐까.
맙소사 한도전 보는데도 '지못미'가 나온다.
차마 네이버 검색창에 '지못미'를 검색해볼 순 없었다.
이건 마치 유호정이 드라마에서' 암환자에요' 했던 것을
잘못 알아들은 초딩이 '아만자가 뭔가요?'라고 질문을 올린 느낌이랄까..
결국 친구에게 물어보고 정말 '깜놀'했다.
최근에 궁금했던 단어는 '병맛'이다. 줄임말, 유행어따윈 전혀 모를 것 같은 진용이의 싸이에
'병맛' 이라는 단어가 있을 때. 아 병맛은 병을 핥았을 때의 그 차가운 느낌인가?
아님 그 병에 살짝 남아있는 뭔가 아쉽고 찜찜한 맛인가?
이건 깜놀과 뭥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이 아니다.
지못미는 그래, 센스있다. 입에 착착 감긴다. 근데 병맛은 뭐냐.
결국 병맛을 혼자 고민하다 딸기에게 문자를 보냈고, 딸기는 병신맛보기라고 했다.
흠좀무나 여병추의 수준이 아니다. 병맛은 정말 획기적인 단어다.
일반인<병맛<병신 의 사이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단어의 탄생인거다.
아. 복학하기 전에는 알아둬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 집안 분위기, 패션,
트렌드 등 모두가 알고 있는 이런 단어 몇가지는 숙지를 해둬야하는거다.
딸기는 씁쓸하게 공부하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냥 패떴만 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요샌 아내의 유혹이 대박이란다.
'이렇게 대한건 니가 처음이야 사랑해'를 풀어놓은 꽃보다 남자는 우리부대 최고의 인기다.
정말. 요즘은 깜놀 하고 뭥미 할게 많은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