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12.

전체 글

    / 2009.01.26 : 점심,대화
    / 2009.01.26 : 맥주마시다가
    / 2009.01.25 : 소모의관계
    / 2009.01.12 : 할머니를 뵙고왔다
    / 2009.01.11 : 바다에다녀왔다
    / 2009.01.11 : 소피아를만나다




형규가 데리러 와줘서 외출을 나갔다왔다. 버스를 타고 형규네 집에 도착해서 옷을 빌려입고 아침으로 삼겹살을 먹었다. 이자식 혼자 밥은 먹고 사는지 폐인처럼 사는건 아닌가 했는데 나름 있을 건 다 있고 벽마다 해야할 일을 붙여놓은 것 보니 괜한 생각한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책임에 대해서, 어울림에 대해서 얘기했다. 우리들이 어울려 다니고, 여행을 가고 대화를 하는 것에는 어떤 책임이나 의무가 있을까. 매달 돈을 내는 것? 빠지지 않고 모임에 나오는 것? 우선순위어야 한다는 것? 또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거나. 그런 책임이 있다면 형규는 모임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는데 책임이, 나는 이해하는 것에 책임이 있었다. 조금씩 쌓여왔던 소홀함에 형규는 미안해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내 목숨같은 친구들을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러면서도 이해받길 바라는 것에 스스로 화가 나 있었다. 혼자 소외감을 느껴서 그걸 털어놓지 않고 등돌린 친구의 태도를 못마땅해 했으면서,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던게 아닌가. 내 입밖으로 그 말들이 튀어나오는 순간 내가 참 못나보였다.
근데 분명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안전한 것만 원해서 실수라거나 모험따위는 하고싶지 않았다. 가령, 일탈이나 장난 따위 같은 것 말이다.
가끔은 정말 재미나 감동을 맞추지 못한 상황이 생겨서 억지 웃음 짓고 싶지 않은데 이들 앞에서도 가끔은 그래야만 하는 나는 참 별나고 까탈스러운 새끼라고.
결국 둘이서 미안함과 자책으로 진행되던 대화는 둘다 이럴 필요가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것에, 이딴 생각으로 쓸데없이 시간낭비나 미안한 마음가져서 무거워지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형규네 집 열쇠를 복사하고, 형규는 명절을 보내기위해 울산으로 갔다. 편의점에 가서 햇반, 프링글스, 오렌지주스, 라면을 사서 형규네 집에 채워놓고 맥주를 마셨다. 조금은 비어있는 시간이 채워진 느낌이다.

daily 2009. 1. 26. 20:22



아웃백에 가고싶어!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효은이가 어디갈래? 라고 해서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약속을 잡고 경성대 앞에서 만났다. 맥주를 마시면서, 밥을 먹으면서 얼마전 서울에 올라갔을 때의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고 일년동안 그렇게 웃어 본 날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다들 스무살적 모습 그대로 즐겁고 재밌는 사람들이라 서울에 놀러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가 변해버린 것도 모르고 다들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니, 어쩌면 변해있었으면 하고 바란건지도 모른다. 변하던 변하지 않던 20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사람이 변하고 자기 살기 바빠서 나도 그 틈에 끼어 치열하게 살아보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가 내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답이다. 내가 변한 것은, 혹은 돌아온 것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태도이고, 그 태도가 이제 무시가 아닌 비하로 변해버린 것이다. 상관없다고 끝내버리는게 아니라 남의 인생을 못살고 있다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그게 피해주는 행동이라고 난 저러지 말아야지 했다. 상관없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들의 것으로 두어야 한다. 그렇게 두고 나한테 끼어들지 못하게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쥐뿔 내가 그에 대해 뭘 안다고 색안경끼냐. 만약에. 만약에 내 인생이, 내가 쓸데 없는 일에 얽혀버려서 내 가치관이나 기준이 흔들리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나쁘고 비겁한 것은 이렇게 못된 생각, 못된 말 다 해놓고 돌아서선 그랬던 것에 미안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결국 비겁하고 당당하지 못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건 내가 아닐까.
아, 나 좀 이렇게 살지마라.

daily 2009. 1. 26. 20:21




지나간 것을 해명하거나 지금 잘못된 일을 해결하려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을 관두려한다.
난 죽어도 너한테 좋은 감정따윈 없었다거나 그건 네 잘못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라거나 지금 이모양 이꼴이 된 이유를 찾아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사과를 받지못해 답답해하지 않으려고.
이런 것들만 줄어들어도 스트레스나 잡생각의 절반은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가 잘못되어 가고 있을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참 슬픈일이다.
내가 해준 것들 했던 말들 뭐하러 그랬나. 그렇게까지, 거기까지 할필요는 없었는데,
그건 교환가치만도 못한 것이 되어서 한 푼이 아쉬울 때, 혹은 완전한 타인이 됐을 때
그건 그저 소모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런 것들 다 없던 일이라고, 혹은 남아돌아서 버려도 되는 것들을 버린 것이라 기억한다.

daily 2009. 1. 25. 16:51




설에 휴가가 없을 것 같아 오후에 할머니를 뵈러갔다.
같은 집에 살 때 그렇게 많이도 부딪히고, 어린시절 내내 친구데려오기 무섭게,
싫게 만든 할머니를 이제는 일년에 두번정도 본다.
할머니께 휴가나와서 찾아왔다고 했더니 왜 이렇게 군대에 오래있냐며
서울에서 대학다니면 군대도 오래있어야 되는거냐고, 몇년있어야 되냐고 하셨다.
아이고. 할머니. 그럼 서울대생은 오년은 있어야하게요..
사실은 할머니와의 기억이나 추억이 별로 없어서 나는 그렇게 몇마디하고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나이가 들수록 할 말은 더 줄어든다.
배가 고팠다. 그냥 할머니는 처음부터 할머니라서 상관없었는데 같이간 고모도, 엄마도, 누나도
나중에 할머니가 되고 나도 할아버지가 되면 아. 싫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할머니는 딱 한 분인데
다른 할머니들은 어떤지 몰라서 내가 아는 사람이 할머니가 되면
지금의 할머니처럼 되는건 아닐까 싶어 괜히 마음이 좋지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를 뵈러 온 게 오늘은 좀 잘못된 일이라 생각됐다.

오리고기를 먹으러갔다.
돼지고기는 있으면 먹고, 소고기는 사주면 먹고, 오리고기는 찾아다니면서 먹으라고 했다.
나중에 집에다가 돼지고기를 쟁여놓고, 소고기는 가족들 사주고,
오리고기는 애인이랑 가족이랑 찾아다니면서 먹어야지.

daily 2009. 1. 12. 23:00




2월에 짧게 여행을 가자고 했었는데 2월엔 집을 구하고, 다들 복학준비로 바쁠 것 같아
일주일만에 잡은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은 크게 신경써서 준비하지 않았지만 이젠 다들 알아서
하나씩 챙기는 덕택에 올겨울들어 가장추웠던 날씨를 제외하곤 부족함이 없었다.
뭐, 추위가 추억일수도 있을것이다. 바다는 환상적으로 좋았다.

너무 급하게, 친구들의 사정은 별로 생각하지않고 나만 생각해서
내 시간과 내 기분만 생각해서 잡은 약속이라 떠나기전에 짜증내고
돌아서선 미안해했지만 다행히 처음으로 9명이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사실 못온다고 하면서도 결국 오게 될 거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했다.
그간 섭섭했거나 부족했던 이야기들 술 한잔 하면서 나올 것 같았는데 함께있다보니
그런 것들 다 기억도 안나더라. 품고있었던게 미안해질만큼.

2002년에 만나서 햇수로 8년차가 되었다. 육두문자가 문장마다 나와도 웃기고
힘들 땐 괜히 짜증내고 심술내도 괜찮다. 우리는 착해서 누구하나 눈에 띌만큼 몸좋은 사람도
잘생긴 사람도 없다. 진실게임 하자고 했더니 물어볼게 없었다.

그런데 난 가끔 나만 기억하느라 조금씩 잊고 있는게 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만나면 놀랄때도 있다. 내가 알고 있던 것 외의 모습을 보게 될 때
나는 그게 신기하기도하고 멋있기도하고 가끔은 그냥 타인으로 보여서 인정하기 싫을때도 있더라.

나는 8년 동안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들은 언제나 고맙게도 8년동안 잘 찍혀주었다.
앞으로도 오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서른이 되서 좀 더 멋진 이름을 만들고 마흔 즈음이 되어서 우리만의 장소를 하나 만들고 거기다가 사진을 걸 수 있었으면 좋겠다.




daily 2009. 1. 11. 15:30




26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온 소피아의 한국이름은 헤라이고 소피아란 이름을 해석해서
한국이름으로 만들어보자면 지혜다. 소피아는 philosophy의 어원이 되는 이름이란다.
나는 아기들이나 어린애들을 보면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르고 달래고 이런것 못한다.
침흘리면 바로 휴지로 닦아야 하고 물건 막 만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소피아는 굉장히 잘논다. 이것저것 어지럽히긴해도 잘 웃어서 좋다. 참 잘 웃는다.
아직 끌어안는 스킬이나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저 어색하지만 귀엽다.
근데 내 조카가 나중에 프랑스어랑 한국어를 동시에 쓴다고 생각하면 조금 샘나기도한다.

나는 어릴 때 공공장소에서 울거나 말썽피운적이 없다고 한다. 거기에 은근히 자부심도 있다


이거 나 어릴 때. (저땐 머리숱도 참 많았네)

daily 2009. 1. 11. 0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