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규가 데리러 와줘서 외출을 나갔다왔다. 버스를 타고 형규네 집에 도착해서 옷을 빌려입고 아침으로 삼겹살을 먹었다. 이자식 혼자 밥은 먹고 사는지 폐인처럼 사는건 아닌가 했는데 나름 있을 건 다 있고 벽마다 해야할 일을 붙여놓은 것 보니 괜한 생각한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책임에 대해서, 어울림에 대해서 얘기했다. 우리들이 어울려 다니고, 여행을 가고 대화를 하는 것에는 어떤 책임이나 의무가 있을까. 매달 돈을 내는 것? 빠지지 않고 모임에 나오는 것? 우선순위어야 한다는 것? 또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거나. 그런 책임이 있다면 형규는 모임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는데 책임이, 나는 이해하는 것에 책임이 있었다. 조금씩 쌓여왔던 소홀함에 형규는 미안해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내 목숨같은 친구들을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러면서도 이해받길 바라는 것에 스스로 화가 나 있었다. 혼자 소외감을 느껴서 그걸 털어놓지 않고 등돌린 친구의 태도를 못마땅해 했으면서,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던게 아닌가. 내 입밖으로 그 말들이 튀어나오는 순간 내가 참 못나보였다.
근데 분명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안전한 것만 원해서 실수라거나 모험따위는 하고싶지 않았다. 가령, 일탈이나 장난 따위 같은 것 말이다.
가끔은 정말 재미나 감동을 맞추지 못한 상황이 생겨서 억지 웃음 짓고 싶지 않은데 이들 앞에서도 가끔은 그래야만 하는 나는 참 별나고 까탈스러운 새끼라고.
결국 둘이서 미안함과 자책으로 진행되던 대화는 둘다 이럴 필요가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것에, 이딴 생각으로 쓸데없이 시간낭비나 미안한 마음가져서 무거워지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형규네 집 열쇠를 복사하고, 형규는 명절을 보내기위해 울산으로 갔다. 편의점에 가서 햇반, 프링글스, 오렌지주스, 라면을 사서 형규네 집에 채워놓고 맥주를 마셨다. 조금은 비어있는 시간이 채워진 느낌이다.
daily 2009. 1. 26. 20:22